일본은 이상하리만치 계절에 진심인 나라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옷차림과 거리 분위기도 함께 변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축제’가 있다. 여행을 계획할 때, 우연히 겹친 축제를 경험하게 되는 것도 좋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그 축제를 중심에 두고 일정을 짜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일본의 사계절 축제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봄, 벚꽃 아래 펼쳐지는 풍경들
봄이 되면 일본은 잠에서 깨어난 듯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도쿄의 우에노 공원이나 교토 마루야마 공원처럼 벚꽃 명소로 알려진 곳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도시락을 펼치는 가족들, 연인들의 사진 찍는 모습이 이어진다. ‘하나미’라 불리는 이 벚꽃놀이는 단순히 꽃을 보는 행위를 넘어, 계절의 시작을 맞이하는 일본인 특유의 인사 같은 문화다.
벚꽃축제 외에도 이 시기에는 전통 신사에서 ‘마츠리’가 자주 열린다. 아사쿠사의 산자 마츠리 같은 경우, 사람 수만 명이 좁은 거리로 몰려들고, ‘미코시’라고 불리는 신성한 가마를 어깨에 메고 거리를 도는 장면은 묘한 열기로 가득하다. 특히 그 행렬에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단순한 관람을 넘은 ‘체험’으로 다가온다.
벚꽃을 테마로 한 계절 한정 간식도 재미있다. 꽃잎이 들어간 떡, 벚꽃 향이 은은한 음료, 한정판 벤토 박스까지, 하나같이 ‘지금 아니면 못 먹는’ 것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관광객 입장에선 축제와 먹거리가 동시에 따라오는, 꽤 알찬 계절이다.
여름, 유카타 입고 불꽃을 보다
여름 일본 여행은 한마디로 뜨겁다. 날씨도 덥지만, 그보다 더 열정적인 건 밤마다 펼쳐지는 불꽃놀이와 사람들의 분위기다. ‘하나비 타이카이’라 불리는 불꽃놀이 대회는 일본 여름의 대표 행사로, 그중에서도 도쿄 스미다 강과 오사카 텐진마츠리는 전국에서 손꼽힌다. 수십만 명이 몰리는 거리, 그리고 고요한 강 위로 터지는 불꽃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유카타를 입고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지역의 오본 축제로 이어진다. 오본은 조상을 기리는 명절이지만, 그 분위기는 엄숙함보단 흥겨움에 가깝다. 도쿠시마의 아와오도리는 춤과 음악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참가자와 관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반복된다. 처음엔 어색하던 리듬도 어느새 따라 추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축제의 재미 중 하나는 밤거리에 늘어선 야타이, 즉 포장마차들이다. 타코야키나 야키소바처럼 익숙한 음식도 있지만, 일본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은 디저트나 음료들을 먹다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축제를 즐긴 느낌이 들 정도다. 무더운 날씨지만, 그 안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가을과 겨울, 조용한 계절의 다른 얼굴
가을은 여름과 달리 훨씬 차분하다. 단풍이 물드는 시기, 거리의 색감은 말 그대로 영화처럼 변해간다. 교토에서 열리는 ‘지다이 마츠리’는 일본 역사의 다양한 시기를 복식과 행렬로 재현하는 축제로,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기분을 준다. 한 줄로 이어지는 행진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선 시대 속 인물들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또한 가을은 수확의 계절답게, 지역마다 감사를 전하는 신사제나 작은 축제들이 활발하게 열린다. 관광객에게는 이름 모를 지역 축제에서 뜻밖의 전통 음식을 맛보게 되는 행운이 따라붙기도 한다.
겨울엔 삿포로 눈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거대한 얼음 조각들이 도시 한복판에 세워지고, 눈 내리는 거리에는 조명이 켜진다. 조용하면서도 장엄한 그 분위기는 다른 계절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가진다. 몸이 움츠러드는 계절이지만, 오히려 따뜻한 온천과 함께하는 겨울 야경 축제는 그 차가움을 이겨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축제는 관광객이 다소 줄어든다는 점에서 여유롭다. 붐비지 않는 거리, 조용한 음악, 그리고 따뜻한 음식—라멘 한 그릇, 오뎅 한 조각이 주는 위로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가고 싶어지는 나라
사실 일본 축제는 단순한 볼거리 그 이상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는 풍경, 그 안에 녹아든 사람들의 삶과 감정은 여행자에게도 진한 인상을 남긴다. 한 계절에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축제, 그렇게 하나하나 모이다 보면 결국 사계절이 다 채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 일본을 여행한다면, 단풍이나 벚꽃도 좋지만 그 계절에만 열리는 축제 하나쯤은 일정에 살짝 끼워 넣어보는 건 어떨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면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