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 가면 누구나 도톤보리의 네온사인이나 신사이바시의 번화가를 먼저 떠올리지만, 저는 늘 골목 끝자락 쪽에 마음이 끌립니다. 큰길에서 살짝 비껴가면 삶의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는 곳들이 있거든요. 지난 여행에서는 일부러 관광지보다 시장을 먼저 찾아다녔습니다. 쿠로몬, 텐노지, 교쿠쇼. 이름만 들으면 알 듯 하지만, 직접 발로 걸어보면 세 곳의 온도와 박자가 얼마나 다른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먹고, 고르고, 사람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며 보낸 시간들—이제 그날의 하루를 있는 그대로 옮겨볼게요.

쿠로몬 시장 — 아침부터 시작되는 오사카의 부엌
새벽빛이 채 사라지지 않았을 때 숙소를 나서서 향한 곳이 쿠로몬 시장이었습니다. 긴 아케이드 양편으로 신선한 생선들이 이불처럼 얼음 위에 누워 있었고, 상인들의 손놀림은 이미 공연처럼 정교했습니다. 어느 가게 앞에서 스시 장인이 칼을 놀리는 걸 보고 멈춰 섰더니, 지나가던 외국인 커플과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나누게 되더군요. 상인이 건넨 참치 한 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촉촉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그 옆에서는 장어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고, 소스가 끓어오를 때 내는 달큰한 향이 시장 전체를 감쌌습니다.
성게알 덮밥을 파는 가게 앞에는 여행객들의 줄이 길었는데, 한 입 먹고 눈을 감는 사람이 적지 않았어요. 저는 가게 주인과 잠깐 수다를 떨며 ‘어떤 계절에 더 맛있냐’고 묻자, 그는 손짓으로 계절별로 다른 재료의 특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짧은 영어와 많은 손짓으로 통했습니다). 아침 시간에는 신선한 재료를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으니, 시장을 방문한다면 꼭 이른 시간에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텐노지 시장 — 동네 사람들의 하루가 흐르는 골목
쿠로몬에서 배를 채우고 난 뒤, 발길을 옮긴 곳은 텐노지 시장이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튀김 기름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한쪽에서는 우동 국물이 자글자글 끓고 있더군요. 눈이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허름하지만 정감 있는 식당이 나왔습니다. 문 앞에 서성이고 있으니 주인아주머니가 “들어와, 자리 있어”라며 손짓했습니다. 그 말투가 이상하게 반가워서, 낯선 동네에서 친척 집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문을 열었죠.
우동 한 그릇과 갓 튀긴 고로케를 받아들고 창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옆자리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제 카메라를 흘깃 보더니 “여행?” 하고 묻더군요. 짧은 대화였지만, 그가 건넨 웃음과 추천 덕분에 바로 근처 튀김집을 찾아가 또 한 입을 더했습니다. 시장 안쪽은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흘렀습니다. 나무 간판이 달린 오래된 가게, 살짝 삐걱거리는 문, 다다미방 안에서 족발을 써는 소리까지… 전부 오래된 영화 속 장면 같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퇴근한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나고, 몇몇은 포장마차에서 맥주잔을 부딪쳤습니다. 길모퉁이마다 웃음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번갈아 울렸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곳에선 보기 힘든, 동네 사람들의 진짜 하루 끝이었습니다.
교쿠쇼 시장 — 조용한 빛과 느린 걸음
교쿠쇼 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유리 천장 너머로 쏟아지는 햇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가득 머문 진열대 위에는 제철 과일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죠. 복숭아, 포도, 멜론이 줄을 서 있었는데, 주인이 내민 시식 포도 한 알이 입안에서 톡 터지자, 아무 말 없이 웃음만 나왔습니다. 가격표를 보며 망설이던 저에게 그는 “여기 건 당도 보장”이라며 농담 섞인 눈짓을 했고, 결국 저는 봉지째 들고 나왔습니다.
시장 한쪽에는 작은 공방들이 있었습니다. 직접 만든 도자기와 목공예품을 진열한 가게 앞에 서자, 장인이 작업 중이던 손을 멈추고 다가왔습니다. 유창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손짓과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통했습니다. 그는 머그컵 하나를 들어 “차에도, 커피에도 좋아”라고 말했죠. 그 한마디에 머릿속에 집 풍경이 그려졌고, 결국 두 개를 샀습니다. 들고 다니는 동안 포장지 사이로 전해지는 따뜻한 촉감이, 이상하게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긴 사람들이 많지 않아 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집니다. 누구의 시선에 쫓기지도 않고, 필요한 만큼 오래 머물렀다가 다음 가게로 향하면 됩니다. 그 여유로움이 이 시장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시장에서 배운 여행법
세 곳의 시장을 돌아보며 알게 된 게 있습니다. 도시를 이해하려면 유명 관광지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먼저 봐야 한다는 거죠. 화려한 건물 속에선 느끼지 못하는 작은 표정과, 사소한 인사가 여행의 기억을 더 오래 남게 합니다.
쿠로몬의 활기찬 맛, 텐노지의 생활 풍경, 교쿠쇼의 잔잔한 숨결. 서로 다르지만 한 도시의 맥박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다음에 오사카를 다시 간다면, 저는 또다시 시장부터 찾을 겁니다.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와 향, 그리고 눈 맞춤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