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혼자 걸어다니기 딱 좋은 도시다. 복잡하긴 한데, 그 복잡함이 오히려 위안이 되는 날이 있다. 사람들 사이로 섞여 걷다 보면 누군가의 일상 사진 속으로 내가 슬쩍 들어간 기분이 든다. 전철 노선은 촘촘하고 친절해서 방향 감각만 조금 익히면 혼자서도 불편함이 없다. 우연히 들어간 골목 카페에서 맡은 향긋한 커피 향 같은 소소한 행운이 여행의 핵심이다. (그날 마신 커피는 지금도 가끔 생각나곤 한다.)
신주쿠 — 쇼핑과 야경의 중심지
신주쿠역은 처음 보면 정신이 없다. 출구가 너무 많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잠시 멈칫한다. 그래서 난 일부러 지도 앱을 꺼놓고, 눈에 띄는 간판을 따라 걷기도 한다. 백화점들이 촘촘히 붙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소박한 라멘집과 이자카야가 숨어 있다. 한 번은 양지바른 골목에서 줄 서 있는 가게를 보고 멈췄다가, 생각보다 국물이 진한 쇼유 라멘을 만나 기분이 좋아진 적이 있다. 저녁 무렵 도쿄도청 전망대에 올라가 본 적이 있다. 무료라서 기대를 안 했는데, 막상 올라가니 불빛이 정말 예뻤다. 조용히 서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오늘도 잘 버텼네’라는 이상한 위로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 날엔 가벼운 도시락(편의점 오니기리 같은 거) 하나면 충분하더라. 골든가이 골목은 좁고 낮은 천장처럼 느껴지는 공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문득 다른 시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부키초는 관광지라서 한 번쯤 둘러볼 만하지만, 밤늦게는 호객이 보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사실 나는 호객을 피하려다 길을 한참 헤맸다.)
시부야 — 젊음과 트렌드의 거리
시부야는 늘 활기차다. 스크램블 교차로에 서면 사람들의 물결이 한 번에 몰려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강물처럼 흐르는 사람들 사이를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묘한 연대감 같은 게 생긴다. 시부야 109에서 최신 패션을 구경하다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의외의 카페가 나오기도 한다. 어느 카페에서는 주인장이 직접 만든 수제 케이크를 팔았는데, 촉촉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청차와 함께 먹으면 좋았다.) 시부야 스카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생각보다 넓고, 해 질 녘의 색깔은 사진보다 눈으로 보는 게 낫다. 요요기 공원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갑자기 소리가 줄어들고 숨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공원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나름의 재미다. 밤엔 일부 골목이 유흥가로 바뀌니 큰길 위주로 다니는 편이 안전하다. 그리고 인파가 많은 곳에서는 꼭 가방을 앞으로 매자. (아주 기본이지만, 가끔은 잊기 쉽다.)
우에노 — 문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
우에노는 천천히 걸을 때 더 매력이 드러난다. 공원 안에는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이 모두 모여 있어 하루 종일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도쿄 국립박물관의 전시실을 걸으며 관람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흘러간다. 어떤 전시에서는 작은 도자기 조각 앞에서 한참을 서서 감상했다. 계절마다 표정이 다른 우에노 공원은, 봄의 벚꽃이 화려한 건 유명하지만 여름의 연꽃이나 가을의 단풍도 조용히 인상적이다. 시노바즈 연못가에서 잠깐 쉬다 보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메요코 시장은 시끌벅적하고 값도 비교적 저렴해서 혼자서 여러 가지를 조금씩 맛보며 돌아다니기도 좋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간단한 스낵으로 배를 채우고, 골목 구경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진다. 주머니 속에 SUICA나 PASMO 같은 교통카드가 있으면 훨씬 편하다.
마무리
신주쿠, 시부야, 우에노는 각자 다른 표정의 도쿄다. 하루에 셋을 다 돌면 꽉 찬 일정이지만,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압축해서 느낄 수 있다. 혼자 걷는다는 건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재밌다. 지도를 들여다보느라 발걸음을 멈추면, 옆에서 누군가 웃으며 길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에 걸음을 맞추기도 한다. 계획과 다른 길로 들어섰을 때 펼쳐진 작은 광경들이 여행을 더 매력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작은 팁 몇 가지:
1) 밤늦게 다닐 땐 가능한 한 밝고 큰 길을 선택할 것.
2) 지하철 환승이 많은 역은 출구를 미리 확인해 두는 게 편하다.
3) 먹을 것은 조금씩 여러 가지를 맛볼 것 — 혼자라면 부담 없이 시도하기 좋다.
추가로: 핸드폰에 지도 앱과 번역 앱을 하나씩 깔아 두면, 모르는 메뉴나 표지판도 금방 해결된다. 그리고 편의점 도시락은 예상보다 맛있다. 혹시 길을 잃으면, 역 직원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너무 긴장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