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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표 유적지 (불국사, 첨성대, 석굴암)

by 라벤더래빗 2025. 7. 29.

천년이 머무는 곳, 경주를 걷다

경주는 가기 전엔 그냥 ‘유적지 많은 도시’ 정도로 생각했어요. 학교 다닐 땐 수학여행지로만 기억돼서인지, 어른이 되어 다시 가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꽤 오래 걸렸죠. 그런데 이번에 직접 다녀와보니, 왜 사람들이 경주를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부르는지 조금 알 것 같았어요.

기차에서 내려 처음 발을 디뎠을 때부터 분위기가 달랐어요. 현대적인 건물 사이로 고분이 불쑥 솟아 있고, 골목길 너머로 기와지붕이 보이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더라고요. 도시에 시간이 켜켜이 쌓인 느낌이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세 곳, 불국사와 첨성대, 그리고 석굴암을 중심으로 천천히 경주를 걸었습니다.

꽃들 뒤로 보이는 첨성대 전경


불국사 – 그냥 ‘예쁘다’고 말하기엔 아까운 곳

불국사는 생각보다 더 넓고, 생각보다 더 고요했어요. 사람들이 많은 편인데도 이상하게 시끄럽지가 않더라고요. 절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보탑과 석가탑은 교과서에서 수없이 봤던 모습이지만, 실제로 마주했을 땐 느낌이 전혀 달랐어요. 정교한 돌 하나하나에서 손길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다보탑은 균형 잡힌 구조가 예술이고, 석가탑은 단순함 속에 깊이가 있어요. 근데 그걸 떠나서 그냥 그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절 안을 걷다 보면 건물 배치나 돌계단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숨어 있다고 하던데, 그런 걸 다 몰라도 ‘아, 여긴 그냥 특별한 곳이구나’ 싶은 느낌은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저는 오전 이른 시간에 갔는데,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던 대웅전 앞 풍경이 아직도 또렷해요. 계절 따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던데, 그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죠.


첨성대 – 작지만 이상하게 오래 바라보게 되는 탑

첨성대는 의외로 금방 보게 돼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이게 끝이야?’ 싶을 수도 있어요. 그만큼 작고 단순한 구조니까요. 그런데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점점 이상하게 빠져들어요. 그냥 돌로 쌓은 탑 같은데, 그 안에 뭔가 계산된 질서가 있는 것 같달까. 선덕여왕 시절에 만들었다는데, 이걸 7세기에 지었다고 생각하면 감탄이 절로 나와요.

중간에 뚫린 창으로 별을 관측했다는 얘기도 있고, 돌 개수에도 의미가 있다던데, 그런 정보 몰라도 상관없어요. 그냥 그 앞에 앉아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아, 이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저녁쯤 되면 조명이 들어오는데, 그때가 진짜 예뻐요. 주변이 은은하게 빛나서, 낡은 유적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바로 근처에 대릉원이나 계림 같은 다른 유적지도 있어서, 걸어서 둘러보기에 딱 좋아요.


석굴암 –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감정

석굴암은 솔직히 기대도 했고, 약간 걱정도 했어요. ‘기대보다 별로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데 계단을 오르고, 그 끝에서 본 풍경은 그런 걱정을 바로 날려버리더라고요. 바다와 산이 동시에 보이는 풍경도 좋았지만, 석굴암 앞에 선 순간, 그냥 숨이 멎었어요.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유리벽 너머로만 보게 돼 있었지만, 그 거리감 덕분에 오히려 더 신비롭게 느껴졌어요. 본존불은 사진보다 훨씬 따뜻한 인상을 줬고, 조용한 공간에 천천히 퍼지는 햇빛이랑 어우러지면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이런 유적 앞에 서면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보다 “이걸 왜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석굴암은 딱 그랬어요.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 같고, 어쩌면 누군가는 자신이 믿는 세계를 눈앞에 구현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년의 기억을 걷는다는 것

경주는 유적지 하나하나가 대단한 게 아니라, 그 전체가 어울려 있는 풍경 자체가 특별했어요. 불국사의 고요함, 첨성대의 묘한 끌림, 석굴암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각각 다르면서도 이상하게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었어요.

혼자 걸었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고, 발걸음이 느려질수록 그 공간과 더 가까워졌어요. 경주는 그런 도시예요. 단순히 구경하러 가기엔 아까운, 마음으로 한참을 머물다 와야 하는 도시. 언젠가 다시 가게 된다면, 아마 같은 장소를 또 가더라도 그때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천년이라는 시간이,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